자기 계발서 열풍에 똥침 놓는 ‘개독교’ 연구자

자기 계발서 열풍에 똥침 놓는 ‘개독교’ 연구자
 
[인터뷰]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 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의 저자 이원석 연구원
 
 
 
데스크 승인 2014.02.21  18:18:08 임수현 (hopesh)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어떤 사람이 한 분야에서만 천 권의 책을 읽고, 그 분야를 비평하는 책을 써서 상을 받았다면 그 비평은 들을 만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모처럼 따스한 오후, 홍대 어느 카페에서 만난 이원석 연구원(언더우드학원선교센터) 얘기다. ‘자기 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를 가진 <거대한 사기극>으로 지난해 출판평론상을 받았다. “첫 책부터 상을 받아 기분이 좋으셨겠다” 물었다. “뭐, 예”로 끝난 대답, 얼른 메뉴판을 건넸다.

이 연구원은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의 추천으로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천 권을 넘게 읽었다. 그 정도 읽었으면 성공 안 하기도 어렵겠다 싶은데 그는 자기 계발서가 오히려 올바른 자기 길을 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비판한다.

   
▲ <거대한 사기극>으로 2013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은 이원석 언더우드학원선교센터 연구원을 만났다. 이 연구원은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사회와 적극 이용하는 교회에 짱돌을 던진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서점에 가 보면 안다. 베스트셀러 코너는 자기 계발서가 점령하다시피 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가 제대로 짚은 걸까.

큰 꿈을 품으라는 자기 계발적 가르침을 따라 10대 때 이 연구원의 꿈은 선교사였다. 3대째 가톨릭을 믿는 가정에서 청소년 때 개신교인이 된 그는 자기 계발서의 지론처럼 위대한 꿈을 꾸었다. “순교가 아니면 휴거를.” (증인은 곧 순교자다.) 물론 믿는 바를 제대로 알고자 성경을 읽고, 기독교 고전을 봤다. 빨리 성장하고 싶어 방언 기도를 하고, 금식을 했다.

선교사 꿈꾸던 10대, 개독교 연구하는 40대

이원석 연구원은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공부를 했다. 박사 과정에서는 문화이론이라는 전공을 택했지만 연구 주제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교회에서 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 가고,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처음으로 다녔던 곳이 개독교의 모델 같은 교회였어요. 돈, 섹스, 권력이 얽히고, 삯꾼 목사까지 온갖 문제가 있던 교회였어요. 지금 와서 보면, 제가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지요. 교회를 통해 새롭게 내 자신, 자아를 만들었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독교 문제에 더 민감해져 이제는 한국 사회의 ‘개독교 스터디즈(studies)’를 창시하겠다라고 반 농담으로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연구원은 잠언 16장 9절 말씀을 언급하며 딱 자기 삶이라고 했다. 위대한 선교사를 꿈꾸다 개독교 현상을 연구하게 된 것, 몇 달 새 펴낸 자기 계발과 관련한 3권의 책(<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 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이 그 방증이다. 3권의 책 이야기에 앞서 그가 말한 ‘개독교 스터디즈’가 궁금했다.

“한국교회는 세상과 짝패예요. 한국교회는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강한 힘에 대한 동경, 의지, 열망을 갖게 됐어요. 그때부터 교회는 항상 권력자 편에 서서, 지배 계층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병리적 상태에 처했습니다. 사학법 개정을 논의할 때 목사들이 스님처럼 머리를 밀었죠. 주5일제가 도입되기 전, 한 목사가 안식일 계명을 내세우며 반대했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노예나 가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의 계명인데, 그 목사는 (6일 동안 힘써 일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전복적 성경 읽기의 정수를 보여 줬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형 교회가 대기업 등의 주류 집단과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스스로 지배 집단에 자리한 이런 예들은 셀 수 없이 많아요.”

미우나 고우나 한국교회 일원으로서 남이 까는 것보다 자기가 까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개독교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읽어 온 자기 계발서가 개독교로 불리는 한국교회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2007년 출간된 <시크릿>은 2년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는데, 2년 전 <긍정의 힘>이 나와서 두 해 동안 기독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요. 그야말로 세례요한처럼 먼저 길을 예비해 줬달까? 그 이후도 마찬가지예요. <아침형 인간>이 나오니까 <새벽형 크리스천>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자기 계발의 터를 닦기도 했지만 백업도 해 줘요. 자기 계발서와 기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긴밀한 사이예요.”

성경에 없는 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자기 계발론은 승자 독식 사회를 인정한다. 경쟁에서 진 사람은 승자보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원석 연구원은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자기 계발의 고전 상당수는 미국 청교도 목사들에 의해 집필됐다. 미국 개척 시대, 현세의 성공을 향한 열망에 자기 계발 패러다임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자기 계발서의 일차적 확산로는 교회였다. 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은 1952년에 쓰여 1955년 번역되고, 필의 후계자 로버트 슐러의 <불가능은 없다>는 출간된 지 1년 만인 1968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번역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출판 상황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속도다.

로버트 슐러의 절친, ‘삼중 축복(요삼 1:2)’의 조용기 목사가 부흥 집회와 기도원 등을 통해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식으로 자기 계발 정신을 퍼뜨렸다. 그가 선포하는 ‘삼중 축복’은 구원의 복이 건강의 복, 경제의 복 등 현세의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IMF 이후 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 계발서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쏟아졌다.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이길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구조의 잘못은 배제하고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고 이원석 연구원은 말했다.

자기 계발의 원어가 “Self Help(자조)”라고 그는 밝힌다. 자기 계발서의 바이블 격인 <자조론>(새뮤얼 스마일스)의 원서 제목이기도 하다. <자조론>의 첫 문장이기도 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미국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데에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모든 걸 건설해 가야 했던 미국적 정황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가 없다.

이원석 연구원은 여기에 돌을 던진다. “정말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까?” 다시 말해서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만을 챙기는 태도가 과연 성경적인가?

자기 계발서는 자조(自助)를 말하지만 이 연구원은 공조(共助)를 말한다. 그는 하늘은 서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믿는다. 교회가 진젠도르프의 모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20여 명의 신도가 한 명의 선교사를 후원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교인 중에 암에 걸린 환자가 있다면, 교회는 암 치료를 위해 돈을 걷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오히려 믿음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했다고 문제를 모두 개인에게 환원해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 돌봄을 잊고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세상 권력을 취한 한국교회는 개독교라고 비판받는다.

   
▲ 이원석 연구원이 펴낸 3권의 책에서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기 계발이 시대 정신이 된 현상에 관한 진단과 그 처방을 발견할 수 있다.

욕망 조장하는 자기 계발서 아닌 진정한 삶 찾는 공부

“자기 계발 사회는 겁을 줍니다. ‘남들처럼 일하면 망해. 더 빨리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일찍 공부해야지’,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는 10억 정도 모아야 해’, ‘중1, 2 때의 성적이 고3 때까지의 성적으로 이어지니,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해야 해’ 등으로요. 또한 자기 계발 사회는 헛된 약속을 합니다. ‘인문학 공부하면 천재의 뇌로 바뀌어서 성공할 수 있어’, ‘성공하려면 성공을 생각해’, ‘지금은 말단 사원이라도 CEO의 마음으로 살면 언젠가는 CEO가 될 거야’ 이런 식으로 욕망을 조장합니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욕망도 아닌 것을 내재화하게 했지요.”

앞서 이 연구원이 쓴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 계발서 읽기>가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진단이라면 최근 출간된 <공부란 무엇인가>는 대안이다. 사회의 거짓된 시스템에서 자기 계발서는 욕망의 체계를 공고히 한다. 인문학마저 조장된 욕망을 내재화하는 데 쓰이는 형편에서 바른 공부만이 대안이라고 그는 말한다.

“인문 고전을 공부한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했다는 말은 허구입니다. 가령 서구 중세에서 인문 고전을 공부한 이들은 수도사들이었고, 그들의 몫은 청빈, 순결, 복종이었습니다. 외려 왕과 귀족은 대개 문맹자들이었지요. 우리 시대 갑부의 대다수가 저학력자들입니다. 인문 고전이 약속하는 것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내면적 자유입니다.

우리도 중세의 수도사들처럼 읽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을 위한 도구로 고전을 대하면 안 됩니다. 논술 준비하듯이 인문 고전을 보는 작금에는 성경마저 기계적으로 대합니다. 매일 구약 3장, 신약 1장 읽기로는 크게 변하기가 어렵습니다.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의 각 권을 가급적 앉은 자리에서 다 읽는 거예요. 특히 복음서를 그렇게 읽는다면, 새로운 눈이 열릴 거예요. 더불어 가급적 한 권의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가령 마태복음서 한 권을 여러 번 통독하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묵상하는 것입니다. 매일 십여 절의 본문을 QT하는 것으로는 크게 변하기 어렵습니다. 한 번에 소화하기에는 본문도 많고, 정해진 도식으로 분석하기 일쑤입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한두 절 정도의 짧은 본문을 개가 뼈다귀 물고 늘어지듯이 곱씹어 읽고, 수시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가급적 일주일 정도는 거기에 매달리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세밀하게 돌아보고, 세상을 다시 볼 때 이전에 깨닫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통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원석 연구원은 자기 계발서에서 주창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현실에 맞닿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기지 않아도 행복한 사회, 자기 계발하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고 결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힘이 거기에 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이원석 연구원이 강조하는 인문 고전 읽기에는 욕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조가 아닌 공조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다. 예수는 로마제국과 종교 체제 속에서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길을 가셨고, 그 결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많은 세속적 위인들도 그렇다. 고대 희랍 도시국가의 현자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약을 받았다. 그들은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상과 ‘맞짱 뜨는 자유’가 있었다. 자기 욕망이 아닌 것에 속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서가 요구하는 고삐 풀린 욕망의 질주를 멈추고, 진정한 자기 길을 찾는 것은 자기 내면을 비추는 공부의 힘으로써 가능하다.

삶에 맞닿은 공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일상을 바쁘게 몰아치는 세상에서 “개가 뼈다귀를 물고 늘어지듯이” 고전을 보고, 성경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 20대는 오찬호 교수(<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가 짚었다시피 자기 계발서의 내용을 완전히 내면화해 사회구조의 불이익을 자기 책임으로 여기고,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원석 연구원이 말하는 제대로 읽기는 여간한 자기 직면에 따른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를 수월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기 계발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개인의 몫과 사회구조의 몫을 항상 구별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가 져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자기 자신과 현실을 바르게 직면하는 것입니다. 많은 돌팔이 약장수들은, 많은 동기부여자, 많은 힐러, 멘토 들은 사회적 차원을 거세하고, 개인적 문제로 줄여 준 다음에 개인의 능력을 부풀리고, 그 욕망을 ‘뽐뿌질’합니다. 상처를 토닥이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격려하며, 더 잘할 수 있다고 다그치면서 말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러한 일차원적 사회 속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면 안 됩니다. (바른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마음과 욕망이 없는 것입니다.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그냥 노량진에서 계속 시험 준비하고, 계속 남 차별하면 돼요.

스스로 직면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경쟁이 옳은 걸까?’, ‘이렇게 결혼하고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내 아이에게도 이런 지옥 같은 세상을 주는 게 옳은 걸까’ 하는 질문이 든다면, 깊이 한번 인문 고전을 보고 제대로 성경을 읽어 보라고 하는 거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남의 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성찰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이원석 연구원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계와 사회, 교회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만드는 데 소망을 두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이원석 연구원이 말하는 바른 공부는 자기 계발서들이 주창하는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현실에 맞닿은, 서로 돕고 살아가기 위한 공부다. 그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연구 공동체를 구상하고 있다. 모여서 생계와 사회, 교회에 대해 공부하고 발표하면서 이야기 나누려고 한다. 교회 밖이든 안이든 더 많은 이들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저는 어쨌든 사람들이 공부하도록 제가 독려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어요. 이미 여러 곳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만 하더라도 청어람아카데미나, 기청아(기독청년아카데미), 현기아(현대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로고스서원 등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많이 그런 운동체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좁은 시장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더욱 파이를 키워야지요.

저는 특별히 교회가 거듭나는 데에는 교양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공부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개독교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이고, 나아가 한국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다시 나타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가 공부하는 교회와 공부하는 사회로 새롭게 나아가는 데에 그저 벽돌 하나를 올리고 싶습니다.

이게 한국 사회와 교회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일자리 못 찾은 수많은 시간강사들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뜻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 안 될 때, 남이 날 도울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공조(共助)지요. 어떤 곳보다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제 책에서 인용한 피터 모란의 말입니다.

‘아무도 부유해지려 하지 않으면 모두 부유해질 것이고, 모두가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는다.'(<인문학으로 자기 계발서 읽기>,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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