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에 부는 공유 바람, ‘오픈사이언스’

과학계에 부는 공유 바람, ‘오픈사이언스’

| 기사입력 2014-02-14 11:24

1600년대에 과학을 이끄는 집단은 둘이었다. 하나는 연금술사, 다른 하나는 자연주의 철학자들을 가르치던 대학이다. 연금술사는 사라졌고, 대학은 지금도 건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대에서 기술 및 소셜미디어를 연구하는 클레이 셔키 교수는 그 차이를 ‘공유’라고 설명했다. 연금술사는 제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법’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대학은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했다. 연구 내용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이 등장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보할 수 있었다. 

고대 과학계에서 불던 공유 바람은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오히려 전세계에 깔린 네트워크를 타고 이전보다 훨씬 넓고 손쉽게 연구 내용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오픈사이언스‘ 운동이 그중 하나다. 

오픈사이언스는 과학자들끼리 적극적으로 연구 결과나 실험 과정을 공유하자는 실천 운동이다. 그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과 기기를 연결해주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인터넷을 통한 오픈사이언스 운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로 과학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어 제약이 되는 규약과 장애물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에선 2009년부터 오픈사이언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대한의학학술지 편집인협의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부 논문 자료를 외부에 공개했고, 연구자료를 공유하는 문화가 조금씩 확산됐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임석종 박사는 “학계에서는 ‘프리프린트'(pre-print)라는 개념으로 논문을 쓰거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연구내용을 주변 사람들과 나눠보는 문화가 이미 존재했다”라며 “그런 문화가 오프라인으로 온라인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자들은 유용한 연구결과를 세상에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보 공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은 다양한 학문분야를 포괄하는 단어인 만큼 오픈사이언스도 다양한 분야를 담고 있다. 오픈소스, 오픈액세스, 오픈 데이터 등이 오픈사이언스에 포함된다. 오픈사이언스는 크게 3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과학자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운동, 과학 연구 결과를 모든 대중에게 공개하는 운동, 과학 실험 장비를 관심이 있는 누구에게나 공개해 원하는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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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끼리 소통하고 공동 연구하자

과학자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하는 과정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연구에 필요한 자료나 결과물들을 인터넷 공간에 저장하고, 이 자료를 다른 학자나 단체와 함께쓰고, 전세계 학자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주고받는다. 오픈사이언스 서밋, 리서치게이트, 매쓰오버플로우 등이 대표 사례다. 

오픈사이언스 서밋 

오픈사이언스 서밋은 혁신적인 미래과학을 설계하기 위해 매년 진행되는 포럼이다. UC버클리 출신인 조세프 잭슨이 만들었다. 학생, 교수, 연구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과학계 발전에 대해 토의한다. 이들은 과학계가 가진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방안도 모색한다. 2010년부터 시작한 이 서밋은 매년 특정 주제를 정하고 문제의식을 공론화한다. 지금까지 신약개발, 유전학, 과학출판물 발행 등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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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게이트 

리서치게이트는 과학자를 위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논문이나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서비스는 e메일 계정이 .edu인 교육·연구단체나, 학교 e메일 계정이 있는 사용자에 한해 가입할 수 있다. 링크드인처럼 개인 경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협업할 사람을 고르거나 특정연구자를 고용할 때 활용되기도 한다. 2013년 리서치게이트 사용자 수는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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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쓰오버플로우 

매쓰오버플로우는 수학계의 지식iN 서비스다. 학교에서 배우는 단순한 수학문제를 풀어달라는 식의 글이 올라오는 건 아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연구원과 교수들이 즐겨 이용하는 서비스답게 대수기하학, 선형대수학, 논리학 등 전문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글이 올라가면 몇 시간 안에 답변이 올라올 만큼 피드백이 빠른 편이다. 2012년까지 매쓰오버플로우를 사용하는 회원 수는 1만6496명으로 알려졌으며 지금은 이보다 규모가 커졌다. 약 4만개의 질문과 답변이 등록돼 있으며, 미국과 인도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athoverflow

■ 연구결과를 대중 품으로

과학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운동은 오픈사이언스에서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부문이다. 이 분야는 ‘오픈액서스’로 따로 분류되기도 한다. 플로스(PLoS)나, 아카이브(arxiv)가 오픈액세스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하버드나 예일대같은 미국 유명 대학 도서관도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오픈액세스 운동은 기존 논문 게재 시스템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시작됐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유명한 과학논문출판지를 이용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고 검수 기간도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점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온라인에서 모두가 무료로 볼 수 있는 논문 저장소를 만들자는 취지가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플로스(PLoS) 

플로스는 미국 공공 과학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학술지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2013년까지 등록된 논문 수는 3만1500개가 넘는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는 학계에선 오픈액세스를 대표하는 웹사이트로 손꼽기도 한다. 이 곳에선 생명과학, 의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 학술지와 학술기사, 논문을 검색 할 수 있다. 논문을 보거나 검색하는 것은 무료이나, 논문을 출판하려면 저자가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plos

아카이브(arXiv) 

아카이브는 논문 출판 전에 만드는 예비초안인 ‘프리프린트’ 논문이 모인 저장소다. 코넬대학이 운영하고 있으며 물리학, 컴퓨터 공학, 수학 등의 자료가 많다. 매달 5천여건의 새로운 문서가 등록되고 있다. 오픈액세스를 활상화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다양한 문서 형식으로 등록돼 있으며 상당수 논문이 재배포 및 수정 활용이 가능하다. 

arxiv

■ 값비싼 연구장비, 나눠씁시다

비싼 과학 장비를 크라우드소싱으로 구매하고 누구나 원하는 실험실을 공유하는 ‘오픈랩’도 오픈사이언스의 산물이다. 과학은 학위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픈랩은 아직 초기단계라 국내에서 진행되는 사례는 찾기 어려운 편이다. 해외에선 미국 시애틀에 있는 하이브바이오 커뮤니티 랩이 지역사회 연구실로 자리잡고 있다. 바이오공학에서 사용되는 연구장비는 비싼 편이지만, 이 랩에선 여럿이 공동 구매하는 하는 식으로 연구 장비를 공유하며 누구나 과학연구에 참여할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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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사이언스가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픈사이언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잘못된 정보가 쉽게 퍼져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 장치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계획했으나 이후 연기했다. 아마추어 과학자가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려한 결정이었다. 잘못 해석된 데이터가 사용되면서 미래 우주과학 연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NASA는 판단했다. 

검증 절차 없이 수많은 논문 자료나 데이터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게 학문 발전에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어설프게 작성된 논문이나 의미없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를 분류하는 작업에도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가짜 오픈액세스 단체가 재능이나 돈을 기부하라는 사기성 e메일을 많이 보내온다며 불평을 터뜨리는 과학자도 늘었다. 

KISTI 임석동 박사는 “인터넷도 초기에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퍼져나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라며 “오픈사이언스에서 제기되는 부작용은 공유 활동에서 나오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유명 오픈액세스 기관은 기존 시스템보다 훨씬 더 투명한 자료 검증 절차를 마련해, 기존 논문게제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임석동 박사는 “몇몇 언론을 통해 오픈사이언스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확대돼 소개되는 측면도 있다”라며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부작용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소장도 “오픈사이언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시대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클래식 애호가가 팝음악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가 말해주듯, 기존 체계에서 인정받는 과학자들은 새 방식에 대해 부정적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픈사이언스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는 평가가 많다. 임석동 박사는 “실제 국내에서 출판되는 오픈액세스 출판율은 2013년에 20%이상 올랐다”라며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오픈액세스 참여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지훈 소장은 “정부와 IT기업이 공공데이터나 오픈소스 같은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보면 이미 공유문화는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라며 “오픈사이언스 문화도 그 중 하나로 앞으로 계속 확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라며 “한국은 여전히 논문 개수나 계량화된 지표로 학자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픈사이언스가 정착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현 기자 jihyun@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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