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사회 ‘빙하기’ 시대 서막

지식사회 ‘빙하기’ 시대 서막
2014-02-10 14:02:36
 

 

<도시의 빠른 발달과 함께 성장했던 ‘지식노동자와 지식산업’ 역시 이제는 기계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그대 떠난 여기, 노을 진 산마루턱에…’  

1985년에 발매된 가수 이문세님의 ‘휘파람’이라는 노래의 도입부입니다. 

 

떠난 님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의 감정을 이문세라는 가수의 꾸미지 않으면서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절절하게 살려낸 아름다운 우리가요입니다. 

 

음악을 들어보면 우리민족의 전통가요 ‘아리랑’을 현대적 팝 발라드로 재해석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정서적 코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노래를 쓴 작곡가 고(故)이영훈님은 이 노래를 통해 산업화가 낳은 도시의 화려함에 마음을 뺏겨 고향과 연인을 버리고 떠나 시골 아가씨와 그녀를 그리워하며 고향에 남은 청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하네요. 

 

외롭고 치열하고 급변하는 자본주의 

 

‘네온사인’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도시’라는 공간은 1980년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겐 동경의 대상을 넘어 충격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화려한 도시에서의 성공을 그리며 가족과 연인 그리고 고향을 뒤로한 채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도시는 기대했던 것처럼 낭만적인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4글자 위에 쌓아져 올라간 도시는 외롭고 치열했으며 냉혹한 곳이었습니다.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도시란 ‘부와 가난’, ‘성공과 실패’, ‘선과 악’이라는 가치들이 공존하고 심지어 그 어느 하나도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아이러니한 공간입니다. 

 

어찌되었건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이 모든 것을 걸고 투신할 정도로 각광받던 직업은 주로 2차 산업(제조업) 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당시 국토개발과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선배 근로자들이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갈망은커녕 기피증상까지 나타나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사실 이런 요즘의 현상은 2차 대전 후 현대 경영학이 미국을 중심으로 자리잡아가면서 피터드러커 같은 경영학자들에 의해 예견되었습니다. 

 

그는 생산, 제조업, 서비스업의 시대가 가고 ‘지식노동자와 지식산업’이 사회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지식노동자, 자본주의 ‘포식자’에서 ‘피식자’로 전락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드러커에 따르면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s)’는 기존의 1,2차 산업에서 노동력과 도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던 ‘육체노동자’와 대비되는 것으로 생산도구인 지식을 머릿속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새로운 개념의 근로자로 표현했습니다. 

 

지식노동자가 세상의 주류가 된다는 말은 ‘무언가 남들보다 차별화 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지식을 바탕으로 수행하는 어떤 종류의 서비스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며 독특한 가치를 가진다’는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개념들을 빌어보면 우리 시대에 의사(doctor)들은 확실하게 ‘지식노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쉽게 접하고 습득할 수 없는 의학지식으로 누구나 쉽게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 된 의료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며 고(高)부가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확실히 ‘의사’라는 직업은 지식노동자의 전형(典型)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에서 포식자로 활동하던 ‘지식노동자’들에게 빙하기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지식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던 의사전문 시대가 끝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포식자였던 ‘지식노동자’에게 소리없이 빠르게 빙하기가 찾아오고 있다.>

 

 

아주 확실한 건 지식노동자들의 빙하기는 파충류(reptile)들에게 찾아왔던 것 보다 ‘더 소리 없이’ 그리고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노동자들의 도구와 노동력은 지식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자동화 시스템으로 불과 몇 십 년 만에 그 가치가 평가절하 되고 대체(replace)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식노동자들의 핵심자산인 ‘지식’과 이에 기반한 ‘정보가공’과 ‘의사결정’을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이 새롭게 대체해가고 있습니다.  

 

의사결정을 넘어 실제 행동까지 인간이 보유한 지식의 가치를 뛰어넘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미 컴퓨터의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논리적 사고를 통해 게임에서 사람을 이기고 신문기사를 작성하고 전쟁이나 조난활동을 수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1996년, 체스의 그랜드 마스터이며 20년간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러시아의 ‘게리 카스파로프’와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세기의 체스대결을 벌입니다.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챔피언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물론 몇 차례의 경기를 더 거치면서 ‘카스파로프’가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키기는 했습니다) 마치 영화 ‘Matrix’나 ‘Terminator’ 에서 보여진 기계에 의한 인류종말의 복선과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이후 IBM은 2011년 TV 퀴즈쇼를 통해 ‘딥블루’의 동생 격인 슈퍼컴퓨터 ‘Watson’을 선보입니다. Watson은 74회 동안 퀴즈쇼에서 연속 승리한 챔피언을 무너뜨리며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경기가 끝나고 한 참가자는 ‘드디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라고 했다네요.   

 

사실 Watson의 등장은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이 인류문명에 새로운 전기를 열어준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Watson의 탄생은 기계가 기계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영역에 한 발 다가섰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가 봐왔던 많은 Sci-fi Movie들 속의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 것이죠. Watson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연산’이 가능할 뿐 아니라 4단계를 거치는 ‘논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즉, 인터넷 연결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 없이도 기존 지식들의 조합을 통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수백 가지의 문제해결방법을 순식간에 검토하고 가장 적합하고 문제해결에 어울리는 방법을 발견하고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론적이긴 하지만 인간이 주어진 시간에 해 낼 수 있는 것보다 컴퓨터의 의사결정이 더욱 고급스럽고 합리적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과학기술의 눈부신, 한 편으로 전율스러운 발전은 의료계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미국에선 컴퓨터공학이나 메디컬센터를 중심으로 환자나 의사의 임상적 의사결정을 컴퓨터가 대신하고 적합한 행동이나 치료를 제안하는 AI System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또,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의학분야에서도 HIV, 초기 또는 소아암, 말라리아, 근육병 등의 난치병 치료제 개발, 인간단백질 구조재분석 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50년 전 영화 속 꿈만 같았던 의료행위가 이미 가능한 미래로 다가왔다.>

 

 

사실 영화에서도 오래 전부터 의학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은 좋은 소재였습니다. 1966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Fantastic Voyage’는 초소형화된 의료장비와 기술로 인간의 뇌를 치료하는 특수부대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80년대 말에 개봉한 영화는 이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영화 속 의료행위도 50년 전에는 꿈나라 이야기처럼 들렸겠지만 이미 가능한 미래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개발된 3D 프린터 기술을 통해 사람 두개골의 75%를 대체하는 수술이 성공했고 유아용 기도 부목을 만들어 이식하고 기관기관지연화증(tracheobronchomalacia)이라는 희귀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프린터기로 인간의 신체조직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요? 

 

지식노동자, 심각하게 생존 걱정해야 

 

이제 지식 자체는 큰 경쟁력이 아닙니다. 인터넷과 Mobile-device의 발달 그리고 이를 통한 지식공유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지식은 누구나 쉽게 습득, 가공, 공유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단계지만 의·약학의 분야도 이런 변화의 조류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과거에 의사가 하던 일 중 몇몇 가지는 아예 필요가 없어졌거나 의사의 도움 없이도 가정에서 직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약에 대한 국민적 상식이 전무하던 시절에는 소화제 한 알을 먹어도 약사에게 문의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약 정보를 직접검색하고 나와 가족에게 적합한 약을 선택하는 일이 아주 흔해졌습니다. 

 

의사가 A약물을 처방한 경우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통해 B약물로 변경을 요청하는 일도 이제는 흔한 진료실 풍경 중 하나입니다. 

 

물론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의사를 대체할 수 있는 기계나 기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백년 전에 누군가가 ‘앞으로는 아이를 인간의 몸이 아닌 유리관에서 수정시키게 될 꺼야’라고 말했다면 성당 앞 광장에서 돌팔매질을 맞아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컨베이어벨트가 많은 공장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던 역사가 있듯이 과학기술과 의학의 만남은 의사나 관련업계 종사자들 같은 대표적 지식근로자들 자리를 슬금슬금 갉아먹어갈 것입니다. 

 

결국 지식노동자들도 이제는 심각하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미 ‘진짜’가 아닌 ‘선무당’들은 정보의 ‘ubiquitous화’로 인해서 소비자들에게 식별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진짜’라고 이런 ‘지식노동자 빙하기’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자신을 바꾸지 못한 고대의 지배자 ‘파충류’들이 멸망해 갔듯이 지식노동자도 자신을 바꾸지 못한다면 기다리는 건 역사책에 ‘지식노동자라는 계층이 존재했었다’라는 문구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지식노동자는 어떻게 자신을 바꾸어 나가야 할까요?’라는 주제를 가지고 칼럼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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