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박지성

비겁한 박지성

read 4563 vote 1 2014.01.26 (15:29:24) http://gujoron.com/xe/434967

    구조론연구소는 관점이 다르다. 남들 다 하는 이야기 할 바에야 사이트 문닫는게 맞다. 일반과 다른 구조론만의 ‘관점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굳이 안 해도 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면 이런 경우다.

    앞에 있었던 고은이나, 강신주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 양반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인건 아니다. 구조론의 관점으로 보면 이들은 대승이 아니고 소승, 고수가 아니고 하수, 팀플레이가 아닌 개인기라는 거다.

    구조론으로 보면 호날두가 메시보다 낫다. 오해하시려면 오해하시라. 메시가 호날두보다 축구를 못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완전성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 하는 개념에 호날두가 더 가깝다는 말이다.

    펠레는 약팀을 만나면 펄펄 날며 한 경기에 몰아넣는 타입이 아니었다. 펠레는 오히려 동료를 잘 이용했다. 그는 팀을 위해 희생할줄 아는 선수였다. 당시 브라질의 축구전술은 토털싸커와 유사했다.

    펠레는 선진적인 축구경향을 잘 이해했고 앞서갔다. 그래서 위대하다. 가치는 개인이 아니라 팀에 있다. 잘 하기는 김연아 개인이 잘 했는데 왜 보태준거 없는 한국인이 김연아 우승에 어깨를 으쓱하냐?

    김연아를 한국팀의 일원으로 보고, 김연아의 성공을 한국팀의 성공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던가? 개인보다 팀이 중요하다. 모든 가치는 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에 주목한다면 월드컵 우승은 뭔가?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면? 브라질인 몸에는 유전적으로 뭔가 특별한게 흐르고 있다는 거다. 확실히 그들의 DNA는 우수하다. 그러나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면? 게르만의 전차군단이라면?

    DNA가 아니다. 게르만족 특유의 팀플레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기분좋을까? 우수한 체력의 브라질? 우수한 조직력의 독일? 결론을 내리자. 독일이 더 기분이 좋다. ‘몸 좋다’보다 ‘머리 좋다’가 좋다.

    개인기는 몸으로 되지만 조직력은 머리로 되는 거다. 우리가 김연아를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리플 악셀을 하는 체력의 아사다 마오에 비해서 김연아가 더 머리가 좋아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스포츠는 체력이 우선이지만 피겨는 몸으로 때우는게 아니다. 김연아의 예술적 깊이는 몸으로 안 되고 머리로 되는 거다. 몸와 머리의 조화가 피겨다. 그래서 우리는 김연아 선수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팀플레이로 이겨야 자랑이다. 몸으로 한다면 흑인이 메달이란 메달은 다 가져 간다. 황인종은 절대 우사인 볼트를 넘을 수 없다. 축구는 몸과 머리의 조화이며 머리를 쓰려면 동료를 이용해야 한다.

    박지성이 특별히 뭔가를 잘못한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언론플레이는 매우 비겁한 행동이다. 하긴 선수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에서는 선수를 비난하는게 진정한 강팀의 면모다.

    외국에도 이런 장면은 많다. 그 나라의 언론이 이런 경우에 절대 문제 선수를 봐주지 않는다. 감독에게 까불다가 퇴출된 선수가 한 둘이 아니다. 인종차별 발언으로 선수가 징벌되는 것도 그렇다.

    선진국일수록 팀을 깨는 돌출행동은 철저하게 응징한다. 인류 전체가 한 팀이기 때문에 인종차별발언이나 정치적 발언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인류호의 팀플레이를 위해 스포츠가 있는 거다.

    디라키움에서 폼페이우스에게 패한 카이사르가 부하들을 꾸짖은 것과 같다. 한국에서는 감독이 선수탓을 하면 비난을 받는다. 감독이 ‘내탓이오.’ 해야 존경받는 감독이 된다. 전쟁을 그렇게 하면 진다.

    카이사르는 ‘이게 다 너희들이 비겁하게 도망쳤기 때문’이라며 부하들을 꾸짖었고 그래서 파르살루스에서 이겼다. 왜 한국인들은 선수보다 감독탓을 할까? 선수는 여럿이고 감독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럿을 탓하려면 헷갈린다. 뇌가 피곤한다. 생각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냥 감독 한 넘을 탓하는게 편하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곤 할 수 없다. 하긴 오합지졸이라면 감독을 탓하는게 맞다.

    그러나 강팀이면 철저하게 선수탓을 한다. 정예는 모두가 감독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다. 한국인 특유의 감독탓, 노무현탓 근성은 일종의 어리광병이다. 스스로를 약팀이라고 여기는 어리광이다.

    이순신 장군은 철저하게 선수탓을 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책임진 전투에서 싸우다 죽은 병사 숫자보다 이순신 장군이 제 손으로 처형한 병사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부하를 죽였기에?

    엔하위키미러백과를 참고하면 동서고금의 명장 중에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인물은 오직 이순신 장군 한 사람 뿐인데 이순신에게도 단 하나의 결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부하를 많이 처형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투를 앞두고 군기를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은 오히려 장군의 덕목이 되므로 그것은 흠이 될 수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에게 엄격할 뿐 아니라 칭찬에도 인색한 인물이었다.

    난중일기나 장계를 비롯한 이순신의 친필기록 중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칭찬을 받거나 높이 평가된 인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하긴 펠레의 칭찬을 받은 선수도 없다. 마라도나조차 펠레에겐 까였으니.

    그런 이순신 장군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병사를 잘 죽이는 군대가 로마군이었다. 로마의 1/10형은 유명하다. 병사들이 전투 중에 등을 보이고 도주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추첨해서 1/10을 죽인다.

    잘못한 병사를 죽이는게 아니라 동료를 죽인다. 개인이 아닌 팀이 잘못했으므로 팀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옛날 프러시아 군대와 러시아군대를 비교한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군대는 잘못한 병사를 불러내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곤장을 친다. 곤장을 맞은 병사는 다른 병사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야말로 고문관으로 찍히는 것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팀플레이 깨진다.

    로마전통을 물려받은 프러시아 군대는 병사 한 명이 잘못하면 전군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과정을 다시 한다. 잘못한 병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무릇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이해해야 한다.

    전쟁에서 병사가 죽는건 그 병사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냥 죽는거다. 대포알이 터지는데 안 죽고 배기겠는가? 결국 개인이 아닌 팀이 잘해야 이기는 거다. 이것이 대승적 관점이고 고수의 관점이다.

    만만하다고 축구협회를 까는건 비겁한 행동이다. 축구협회는 돈만 만들어오면 된다. 축구협회에 할말이 있으면 돈 문제를 제기하는게 맞다. 네티즌의 무작정 협회까기는 마녀탓하기 같은 헛지랄이다.

    마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론이 없어서 편하다. 이 얼마나 비겁한가? 중요한건 현재 대표팀이 분열되어 있고 통제방법이 없는 거다. 과거에는 병역혜택과 해외진출이라는 두 가지 당근이 있었다.

    지금은 병역혜택도 없고 해외진출은 이미 했다. 감독이 선수단 장악할 수단이 없다. 이렇게 된 책임은 30살 애송이 주제에 대표팀 탈퇴를 선언한 박지성에게 있다. 그때 차범근이 했던 말 기억하는가?

    자책을 하는 내용이었지만 방점은 ‘겨우 서른살 먹은’에 찍혀 있었다. 있을 수 없는 하극상이다. 히딩크 때 대표팀 안시켜 줬으면 오늘의 박지성은 없다. 자기는 혜택 받을대로 받고, 해외진출 하고.

    수백 억 챙기고 이젠 빠지겠다? 이건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런 넘은 빼버려야 한다. 감독이 부르면 선수는 무조건 달려가는 거지 무슨 군말이 있는가?

    변명을 해도 감독 앞에서 본인이 직접 하는 거지 뒷구멍으로 언론플레이라니.모든 판단은 감독이 하는 거다. 감독이 ‘지성이 넌 그냥 벤치에 앉아서 후배들 응원이나 해.’ 하면 그렇게 하는 거다.

    내가 홍명보라면 이런 식으로 하극상이 만연하는 판에 감독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국대감독 때려치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뭐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소속팀에 피해줘가면서 미쳤다고 국대하나?

    대표팀에서 열심히 뛰어봤자 부상이나 입을거고, 소속팀에서 자기 연봉만 깎일 뿐이다. 메시나 호날두라면 진작에 빠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메시도 없고 호날두도 없는 월드컵을 봐야 하고?

    월드컵 자체가 붕괴될 판이다. 월드컵 뛰다가 부상 입은 펠레만 불쌍하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월드컵 하지말자고 하는게 맞다. 펠레도 월드컵 출전을 거부한 적 있다. 그래서 피파가 규정을 바꿨다.

    축구 룰을 바꿔서라도 펠레는 출전해야 한다. 펠레없는 월드컵은 월드컵이 아니니까. 축구협회 규정을 바꿔서라도 감독이 박지성이 필요하다고 하면 박지성은 출전해야 한다. 그게 축구다. 

    진보나 보수 개념을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막연하게 느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가 진보니까 선수편 들자? 전쟁을 개인주의로 하면 전멸이다. 다 죽었는데 무슨.

    진보는 팀플레이며 언제라도 팀이 우선한다. 팀을 위해서 감독이 팽 될수도 있고, 선수가 팽 될 수도 있다. 월드컵이 3년 남았다면 박지성 하나 제압 못하고 망신 당하는 홍명보를 자르는게 맞다.

    지금은 시기상 홍명보를 자를 수 없으므로 박지성을 까는게 맞다. 진정한 진보는 상호작용을 늘리고 관계를 긴밀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 고대 건물이 다 무너져도 아치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치는 팀이기 때문이다. 서로 이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팀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게 진정한 진보의 정신이다. 노무현이 감독일 때는 진중권 선수든 강준만 선수든 감독 말을 들어야 한다.  

    개인주의? 감독이 선수에게 사적인 심부름 시키면 안 된다는 거다. 사적으로는 올랑드가 바람을 피워도 터치 안 한다. 공적인 문제는 졸라게 까는게 진보다. 이런 정도는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 

    덧붙이자면.. 

    척계광의 원앙진은 12명으로 된 팀원이 조장을 보호하게 되어 있었다. 전투 중에 조장이 죽으면 나머지 병사는 모두 처형한다. 병사들은 조장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워야 했다. 최강의 군대가 되었다. 이들은 군기가 엄격해서 임진왜란 때도 조선의 백성들에게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았고 왜적과의 싸움에서도 언제나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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